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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광물

OPEC 같은 희귀 광물 생산국 연합이 가능할까?

OPEC 모델의 적용 가능성과 희귀 광물 시장의 특수성

OPEC(석유수출국기구)은 원유 생산량 조절을 통해 세계 석유 시장의 가격 안정과 생산국 간 협력을 도모한 대표적인 자원 카르텔이다. 이러한 모델이 희귀 광물 시장에 적용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는 최근 들어 점점 더 현실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희귀 광물(rare earth elements)은 전기차, 반도체, 스마트폰, 군사 장비 등 광범위한 전략 산업에 사용되며, 그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원의 생산과 정제는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희귀 광물 생산의 상당 부분은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기준 전 세계 희토류(rare earths) 정제 생산의 약 87%를 중국이 담당하고 있으며, 원광 채굴에서도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출처: US Geological Survey, 2024). 이러한 독점적 구조는 다른 주요 자원국들에게도 위기의식과 동시에 전략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브라질, 베트남,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희귀 광물 매장량이 풍부한 국가들은 자국 산업 보호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자원 협력체 구성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석유처럼 유통이 비교적 단순하고 가격에 민감한 자원과 달리, 희귀 광물은 종류가 다양하고 각기 다른 산업적 용도와 가공 특성을 갖고 있어 단일한 조정 메커니즘을 만들기에는 구조적 난관이 많다.

OPEC 같은 희귀 광물 생산국 연합이 가능할까?

주요 생산국들의 입장과 전략: 중국, 아프리카, 남미, 아세안

중국은 사실상 비공식적인 “희토류 OPEC” 역할을 이미 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중국 정부는 희토류 수출에 대해 자주 수출 제한, 쿼터 설정, 환경 규제를 활용해 가격을 조정하거나 지정학적 도구로 삼아왔다. 특히 2010년 일본과의 영토 분쟁 당시 희토류 수출을 제한한 사건은 전 세계가 희귀 광물의 전략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됐다. 최근 중국은 희토류 관련 산업에 대해 정부 주도하에 통합화 및 내수 중심 전략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희귀 광물을 지정학적 수단으로 계속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한편 아프리카 국가들, 특히 콩고민주공화국(DRC), 탄자니아, 잠비아 등은 리튬, 코발트, 망간 등의 원광을 다량 보유하고 있음에도 가공 및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주요 이익을 외국 기업에 의존하는 구조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2022년에는 DRC, 잠비아, 탄자니아 등이 남부아프리카희귀광물협의회(SARMC) 설립을 제안하며 자원 가격 협상력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가공을 자국 내에서 진행하고, 서방 국가가 아닌 지역 내 파트너와 협력하겠다”는 전략을 표방하고 있다.

남미 역시 움직임이 활발하다. 세계 리튬 삼각지대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는 “OPEC for Lithium”이라는 이름의 협력체를 논의해 왔다. 2023년에는 볼리비아 정부가 “국영 리튬 회사 간 협력과 가격 안정화를 위한 공동 의사결정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칠레도 자원 국유화 및 공공-민간 합작 방식의 생산 모델을 통해 전략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향후 희귀 광물 생산국 간 연합의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 산업 발전 수준, 기술 격차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실질적인 연합이 구성되기까지는 상당한 조율이 필요하다.

 

국제적 반응과 공급망 재편 속의 투자 전략

 

희귀 광물 생산국 간의 협력 움직임에 대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자원 수입국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자국 산업 보호와 전략적 자율성을 위해 “중국 의존 탈피”를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특히 미국은 ‘Inflation Reduction Act(IRA)’ 및 ‘CHIPS and Science Act’를 통해 희귀 광물 공급망의 다변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동맹국들과 함께 자원 공동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일본 역시 인도, 호주, 베트남 등과 희토류 개발 협정을 체결하고 있고, 유럽연합은 ‘Critical Raw Materials Act(2023)’를 통해 채굴, 정제, 재활용까지 통합된 공급망 확보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대응 속에서 희귀 광물 연합이 실제로 만들어진다면, 이는 글로벌 공급망에 구조적 충격을 줄 수 있다. 자원 독점은 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이는 기술 제조업체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반면 생산국에게는 엄청난 외화 수익과 기술 투자 유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주목해야 하며, 관련 광물 ETF, 광산 개발 기업, 채굴 기술 보유 스타트업 등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유망할 수 있다. 특히 지정학적 리스크와 ESG 기준을 동시에 고려하는 ‘자원 민감형 포트폴리오 전략’이 중요한 대응 방식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OPEC과 유사한 희귀 광물 생산국 연합은 현재 개념적으로 가능성은 존재하되, 실질적인 연합체로 발전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그 전조는 각국의 자원 정책과 협력 움직임 속에서 감지되고 있으며, 향후 글로벌 자원 지정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연합 구상의 구조적 한계와 윤리적·환경적 고려

OPEC과 같은 희귀 광물 생산국 연합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생산국 간 이해관계의 정렬, 국제법적 기반, 기술·자본력의 균형 등 복잡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희귀 광물 시장은 공급망이 다층적이고, 채굴-정제-재활용 과정이 국가별로 분산되어 있어 통합적 조율이 매우 어렵다. 또한 광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수요 산업군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특정 자원에 대한 통일된 가격 정책이나 쿼터 설정이 실제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예컨대, 리튬과 코발트는 배터리에 집중적으로 사용되는 반면, 네오디뮴(Neodymium)이나 디스프로슘(Dysprosium)은 전기모터와 국방 산업에서 중요한 자원이기에 산업 간 이해관계도 상충할 수 있다.

더불어 환경적, 윤리적 기준 역시 연합 구성의 중요한 장애 요인이다. 국제사회는 최근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기준을 강화하고 있으며, 자원 채굴에 따른 생태계 파괴, 아동 노동, 토착민 권리 침해 문제는 세계적인 감시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아동 노동 문제로 인해 몇몇 글로벌 기업이 공급 계약을 중단한 사례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연합을 구성하는 국가들이 단순히 자원 확보와 가격 주도권에 집중할 경우, 국제사회로부터의 신뢰와 협력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희귀 광물 연합 구상은 단순한 경제 블록을 넘어, 지속가능성과 투명성 확보라는 과제를 병행해 해결해야 할 것이다.